*크롬브라우저에 최적화된 홈페이지입니다*
[ 경기도요트학교에서 세일링 교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TEL.031-255-3830 (요트협회)
TEL.070-4247-6730 ( 요트학교)

역사

요트의 역사는 배가 생겨난 순간부터 요트의 발생 단계로 볼 수 있으나 배 자체만 가지고는 요트라 할 수 없기 때문에 배(boat)에 세일(sail)을 언제부터 사용하게 되었는가가 정확한 요트의 역사라고 할 수 있으며, BC3400년경 이집트 벽화에 횡범과 노를 병용한 범선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나일강에서 그것을 이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여러 가지 목적이나 교통의 수단으로 차츰 노 배에서 범선으로 발전해 왔으며 BC 15년~AD 4세기경 동지중해에서 크게 번창한 페니키아 상선, 그리스ᆞ로마 시대(BC 9년~AD 5세기)와 바이킹 원정 항해 시대(9~10세기) 등을 통하여 상아대(노)와 돛을 병용한 배와 횡범선 시대를 보냈다.

실제 풍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종범도 아라비아인의 라틴 세일 이후 15세기경에 오리엔트인이 사용한 것이라 한다.

17세기 중엽에는 네덜란드, 포르투칼, 스페인 등의 식민지 경쟁으로 대형 범선을 정책적으로 건조하게 되었으며 1720년에는 역사상 최초의 요트 클럽 “코크하버”가 창립되었다. 그 후 동인도, 서인도 제도와 서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삼각무역에 의한 항해 시대가 다가와 해양의 중요성을 배경으로 범선의 전성시대를 맞게 되었으나 산업 혁명 후 증기기관과 엔진의 발명으로 교통수단으로서 범선은 쇠퇴하게 되었다.


요트(YACHT)의 어원은

네덜란드어의 야흐트(Jaght)에서 유래되었으며, 야헨(Jagen)에서 파생되었다. 이는 “사냥하다”, “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람의 방향에 크게 구애 없이 어떤 방향으로도 자유자재로 달릴 수 있도록 고안된 근대적 요트는 1660년 영국의 국왕 찰스 2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기증한 2척의 수렵선이 요트의 시초이며, 찰스 2세는 이후 이와 비슷한 배를 몇 척 더 건조하여 본격적인 경기를 시작 하게 되었는데

역사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첫 번째 요트경기는

1661년 찰스 2세와 동생 요크 공작 제임스와의 경기로 템즈강의 그리니치에서 그레이브 센트까지 37km의 코스를 사용해 100파운드 내기 경기였다. 이 후 경기로서의 요트가 보급되었으며, 여러 요트클럽과 공식적인 경기가 시작되었다. 영국에서는 경기가 의욕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747년에는 경기규칙이 생겼고 1775년에는 대규모 요트대회가 시민이 참가하는 가운데 행하여 졌으며 신대륙의 발견으로 메이 플라워(May Flower)호가 신대륙을 건너가 요트가 미국의 동해안에 전파되어 1844년
에 뉴욕에 요트 클럽이 생겼다.

아메리카스컵(Americas Cup)

1851년에는 대서양을 건너온 아메리카 (America)호가 영국의 와이트섬 일주 경기에서 17정을 상대로 압도적으로 우승함으로써 미국이 요트강국으로 등장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아메리카스컵(Americas Cup)의 효시이고, 매치레이스인 아메리카즈 컵(Americas Cup)과 대양을 횡단하는 오션 레이스(Ocean Race), 올림픽게임이나 아시안게임의 딩기 레이스(Dinghy Race)를 들 수 있고 레저로서는 주말이나 휴일에 심신단련을 하기 위해서 크루징 세일링(Cruising Sailing)을 즐긴다

한국 요트사

1930년경 연희전문학교의 언더우드씨가 한강변의 배 목수를 시켜 요트를 제작하였고, 황해 요트클럽을 설립하여 한강에서 활동한 것이 우리나라 요트의 효시라 할 수 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일제는 국내 요트 금지령을 내리며 요트를 제작하고 타는 행위를 금지했으나 광복 후 미군들이 타기 시작하며 세일링이 시작되었다.

1960년부터는 내국인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요트를 제작하여 즐기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호인의 단체를 구성하여 보급하고자 하는 시도는 없었다.

동호인으로부터 시작

본격적으로 요트 보급이 활성화 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경 몇몇 동호인들이 한강에 턴 클래스(turn class) 20척을 합판으로 제작하며 대한요트클럽을 설립하면서 부터이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활기를 띠었고, 1974년 4월 대한조정협회에 요트부를 신설하고 요트경기 보급에 나서게 되었다.

대한요트협회 창립

1979년 3월 17일 대한요트협회를 창립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을 하기 시작하며 대한체육회와 세계요트연맹에도 가입하였다.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2002 부산아시안게임, 2005년 세계청소년요트대회, 2006년 세계레이저클래스선수권대회, 2006년 세계포뮬러윈드서핑대회를 개최하였고  2009년에는 세계요트연맹 연차 총회,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개최하여 국위를 선양하였다.

국제대회 출전과 메달 획득

이처럼 국제대회를 유치함과 동시에 심이섭&강왈수 선수조가 1982 인도 붐베이아시안게임에서 엔터프라이즈급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박길철 선수가 1986 서울아시안 게임과 1990 부산아시안게임 레이저급에서 첫 2연패를 이룩하였으며,  김대영&정성안 선수 조는 1998 방콕아시안게임, 2002 부산아시안게임, 2006 카타르아시안게임 470급에서 3연패의 쾌거를 이루었다.

1998 방콕아시안게임(금6, 은1, 동3)/ 2002 부산아시안게임(금6, 은2, 동2)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성적을 거둬 경기력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